사이버범죄 & 정보리터리시 소식

 

▧ No, 926
▧ 일시: 2009-07-28
▧ 언론매체: 위클리조선
▧ 2009/7/30(목)
[사이버 다중인격] 처벌 논란  

[사이버 다중인격] 처벌 논란
위클리조선 기사전송 2009-07-28 10:06

문제없다 - 인정받고 싶은 욕구일 뿐 왜 굳이 현실과 연계하나

인터넷상의 ‘다중인격’ 현상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다중인격’을 ‘다양한 체험’의 실현으로 보는 긍정적인 시각이 있는가 하면, 정신병리적인 장애나 일종의 ‘사기 행각’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특히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 자신의 이력을 완전히 속이고 다른 사람인 척 행세하는 것은 ‘신분 위조’와 다를 게 없다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인터넷상에서 신분을 위조하더라도 타인에게 심각한 물적·인적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사기죄’를 적용하기도 어렵다.

전문가들로부터 ‘사이버 다중인격’에 대한 엇갈린 의견을 들어봤다.


** 문제 없다

지난해 ‘미네르바’란 인물이 대한민국의 경제 위기를 예측했다고 했을 때, 한 기자가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거 사기 아닌가요?” “이 사람이 다중인격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요?” “어떻게 공고를 졸업한 주제에 자신을 경제전문가라고 속일 수가 있는 거죠?”

이런 질문들은 현실과 다른 사이버 공간의 정체성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왜 내가 믿고 싶은 것과 다르게 나타나 나를 혼란스럽게 하느냐는 것이다.

한국인의 심리에서 “내 마음 알아주세요” “내 말 좀 들어주세요”와 같은 호소는 간절하다.
현실이나 사이버 세상 모두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의 표현이다.
현실에서 무시를 당하거나 잘나지 못한 사람일수록 이런 욕구는 더욱 크다.
번듯하게 잘사는 사람이 아니면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다.

이런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소위 ‘현실에서 잘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이버 공간을 현실과 같은 공간이라고 믿는다.
이런 사람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다중인격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대표적인 증거가 바로 오프라인과 다른 온라인의 정체성을 ‘다중인격적 망상’으로 보려는 입장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이뤄지는 ‘정체성 놀이’는 오프라인에서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일종의 사기극과 같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처벌해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도 편다.
하지만 호통치는 당사자도 그 죄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정작 모른다.
다만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는 괘씸죄 수준을 언급할 뿐이다.

이는 아이들의 놀이와 실재의 행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일차원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다.
산업 사회를 넘어 정보화 사회를 이미 몇 년 이상 겪었다는 대한민국 사회가 가진 정체성에 대한 의식수준이 이 정도다.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마음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는 확신이 바로 근대인의 생각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이런 확신의 표현이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고정적이고 안정적으로 의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근대사회는 한 개인의 마음과 정체성을 다양한 상태나 이미지로 표현하는 것을 비정상적인 병리현상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정체성의 붕괴를 ‘정신적 해리’ ‘다중인격’ 등 일탈행위로 봤다.

‘사이버공간의 무법자’ ‘온라인 세계의 범죄자’… 자신의 정체성을 사이버 공간에서 새롭게 만들어낸 이들을 의미한다.
처녀가 아줌마 행세를 했다고 해서, 백수가 변호사나 의사 행세를 했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정신병리적인 현상이 될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그것을 ‘누가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결국 사이버 공간을 현실과 동일하게 보려는 근대적 사고를 따를 것이냐, 현실과 다른 사이버 공간의 특성을 알고 인정할 것이냐의 차이다.
현대판 마녀사냥은 탈근대적 사회에서 아직 근대적 사고의 틀을 벗지 못한 인간들에 의해 일어난다.
사이버공간의 ‘다중이’는 우리 사회가 근대 사회에서 탈근대 사회로 전환돼 가는 시점에서 다시 한번 인간의 행동과 심리에 대한 몰이해가 벌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 문제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철저히 구분되는 세계라고 생각됐다.
온라인 세계는 그저 자유로운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어야 하는 ‘해방구’였다.

하지만 인터넷이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오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구분하는 게 더 이상 의미 없는 시대가 돼버렸다.
여기에 인터넷의 가장 큰 특성인 신속하고 광범위한 정보 확산까지 더해지면서 온라인의 영향력은 더 커지게 됐다.
온라인에도 일정 부분 오프라인의 법 체계가 적용돼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재 사이버 명예훼손과 같은 온라인 범죄는 현실보다 강하게 규제되고 있다.
‘정보통신망법’ 제70조에 따르면,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 등에 처한다. 반면 형법상의 명예훼손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뿐이다.

‘사이버 다중인격’도 마찬가지다. 사이버 다중인격을 ‘놀이’나 ‘재미’로만 인정하는 건 온라인 공간이 말 그대로 ‘Another area’였을 때 얘기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히 다르다. 온라인에 형성한 ‘또 하나의 자신’을 얼마든지 오프라인 세계와 연결할 수 있게 됐다.
인터넷 모임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연결되기도 하고, 인터넷에서 함께 공유한 정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 관계를 이어가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지는 ‘사이버 다중인격’은 심각할 경우 ‘기망 행위’로 반드시 실정법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
나쁜 의도를 갖고 남을 속이는 ‘다중이’들은 사이버 공간을 순수한 표현의 장(場)이 아닌, 남을 속이기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
현재로선 사이버공간에서의 다중인격을 기망 행위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법이 이런 유형의 정체성 문제를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이버 명예훼손죄’의 흐름과 비슷하게, 사이버 기망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처벌 조건은 까다로워야 한다.
인터넷 게시판에 ‘내가 대통령이다’ ‘내가 경제전문가다’라고 아무리 떠들어도, 누군가에게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주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허황된 정보를 블로그에 잔뜩 올려놨다고 해도, 블로그 자체가 공문서나 이력서와 같은 진실만을 담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누구나 블로그를 ‘나만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잘못된 정보가 특정인을 속이기 위해 올라온 것이라면 처벌해야 한다.
특별법에도 사이버 기망 행위가 현실적인 피해로 직접 연결될 때에 한정해 처벌한다는 규정을 명백히 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블로그 자체에 오로지 ‘진실’만 담겨야 한다는 장기적인 사회적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인식 변화다.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는 게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타인에게, 특히 청소년에게 악영향을 주는 다중인격 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면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블로그나 인터넷 게시판도 그 영향력을 고려해 장기적으로 어느 정도 진실성 있는 내용만 거르는 사후 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 강경근 숭실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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