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강도´ 기승에 고객 ´벌벌´..기사는 ´한숨´
 
2008-12-09 11:41:36 
 
서울에서 친구와 함께 자취생활을 하는 선모(28, 여)씨는 집에 혼자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울리면 괜히 겁부터 난다.

며칠 전에는 ‘택배입니다’라는 선 굵은 남자 목소리에 보던 텔레비전 음량을 줄이고 아무도 없는 척 행동한 적도 있다.
몇 년 전부터 종종 뉴스에 등장했던 ‘택배기사 위장 강도’가 또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이다.

▲택배강도 잇따라..여성.주부들 불안감 확산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택배기사로 위장한 강도들이 잇따라 경찰에 검거되면서 혼자 사는 여성과 가정주부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선씨는 "워낙 세상이 흉흉하다보니 혼자 있을 때 택배 배달이나 가스, 보일러 수리공이 오면 괜히 문 열어주기가 겁난다"며 "택배기사로 위장한 강도에 대한 뉴스를 종종 보다보니, 조심해야겠단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광명에 사는 이모(34)씨도 "하도 위험한 일이 많아서 남편 없을 때는 문을 두드려도 안열어준다"면서, "차라리 경비실에 맡겨놓도록 했다가 나중에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택배배송이 주로 가족 대부분이 출타 중인 낮 시간에 이뤄지고, 택배배달이라고 하면 아무 확인 절차 없이 문을 열어주는 사람들이 많아 고객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마산에 사는 이은진(27)씨는 "주문할 때부터 ‘배달 전 전화를 달라’고 꼭 메시지를 남기고, 가족들끼리 서로 택배 주문한 게 있으면 미리 말해둔다"면서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단 생각에 미리 확인하곤 하는데 가끔 습관적으로 그냥 문열어줄 때도 있다"고 말했다.

▲ 저임금.고노동 택배기사 한숨만
택배기사 위장 강도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가장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실제 현장에서 택배배송업을 담당하는 기사들이다.

저운임과 인력부족난으로 하루 많게는 100~200개의 물량을 혼자 배달해야 하는 택배기사들은 물품 배송 중 가끔 고객들로부터 범죄자로 오인받는 경우가 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CJ GLS 영업소 관계자는 "정식 배송사원으로서 소비자를 위해 상품을 갖다 주기 위해 방문한 것인데, 문을 안 열어주고 범죄자로 오인하는 고객들이 많아 솔직히 힘들 때가 있다"고 하소연했다.

대한통운 영업소 관계자 또한 "간혹 고객들이 쉽사리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있어 아쉬울 때가 있다"면서도 "요즘 범죄가 많이 발생하다보니 답답하지만 한편 ‘그러려니’하며 넘기려고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 업체 대응책 한계 있어
대한통운과 현대택배, CJ GLS, 한진택배 등 국내 택배업체들은 전 택배사원들에게 유니폼과 사원증을 필수적으로 채용하게하고 인터넷 배송안내를 강화하는 등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응책에도 불구, 택배기사로 위장한 각종 범죄들을 완전히 뿌리뽑을 수는 없다는 것이 택배업계의 하소연이다.
나름 대응책을 마련하고 문자서비스, 전화공지 등을 강화하고 있으나, 버려진 운송장까지 이용해 범죄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막기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

업계관계자는 "택배배송을 악용해 범죄로 이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사실 택배업체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면서 "범죄에 대응해 업계 측에서 딱히 세울 수 있는 방안은 그렇게 많지 않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주의"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위장강도에 대한 택배업체들의 대응책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고 꼬집는 고객들도 많다.

성남에 사는 권충영(28)씨는 "배송안내 문자와 전화도 100% 다 이뤄지는 게 아니라, 연락없이 택배가 도착해있는 경우도 있다"면서, "사원증도 얼마든지 위조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소비자들의 주의도 중요하지만 택배업체들도 대응책에 대해 더 깊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e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