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맹이 빠진 사행산업 규제 알맹이 빠진 사행산업 규제
사행사업자 로비로 ‘전자카드 도입’ 좌절 … 관련부처 반발도 한몫
내일신문 2008-07-31 오후 1:25:28 게재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마련 중인 사행산업 건전화 계획이 알맹이가 빠졌다. 관련 부처의 비협조와 사행사업 기관의 반대 로비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사감위는 지난 1월 10일 ‘사행산업 건전발전 계획’을 내놓고 인터넷 배팅 폐지, 사행사업장 출입 전자카드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30일 열린 사감위 민감위원 간담회에서 전자카드 도입은 재논의하고 인터넷 배팅은 폐지 대신 단계적 축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규제책 실효성 의문 = 사감위는 30일 전체회의를 열고 △OECD 수준의 사행산업 유지 △장외매장 매출 구조 개선 등을 결정했다. 사감위는 사행산업 매출을 조절해 2011년에는 OECD국가들과 비슷한 규모로 유지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국내 사행산업은 순매출을 기준으로 GDP의 0.67%로 OECD국가들의 평균 사행산업 규모(GDP 대비 0.58%)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상황이다.
본경기장과 장외매장의 매출구조를 현재 2대8 수준에서 5대5로 축소키로 했다. 사실상 ‘도심지 도박장’이나 다름없는 장외매장에 매출이 집중되는 구조를 개선하고 장외매장의 신설과 증설을 막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행산업 축소를 견인할 수 있는 세부 정책추진은 미흡해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대표적으로 1인당 배팅금액 10만원을 규제할 수 있는 전자카드 도입은 원점에서 재논의된다. 전자카드는 사행시설 출입자의 실명카드로 사행사업 이용한도를 제어할 수 있다. 또 타인에게 양도할 수 없고 개인의 이중발급을 차단하는 기능을 갖고 있어 업계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사감위는 사행사업자들의 ‘개인 사생활침해’ 논리에 밀려 관련부처와 전담반을 구성해 처음부터 재논의키로 했다.
또 온라인 도박이나 다름없는 온라인 배팅을 폐지하지도 못했다. 온라인 배팅은 시민단체와 도박중독 피해자들로부터 ‘사행산업 이용자를 불법 온라인 도박으로 전이시키는 통로’역할을 했다는 비난을 받아온 것들이다. 현재 경마는 인터넷과 휴대폰을 통해 배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경정과 경륜은 이를 중단한 상태다.
사감위는 이날 회의결과를 문서로 정리한 뒤 관련 부처 의견수렴을 거쳐 내달 20일 발표키로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통과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다.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정부, 지자체가 도박사업 규제에 반대 = 사감위는 사행산업 건전화 계획 수립과 관련해 중앙부처는 물론 지방정부와, 사행사업자들의 전방위 압박에 시달렸다.
지난 24일 허남식 부산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김태호 경남지사, 김태환 제주지사는 공동건의문을 내고 ‘경마·경륜·경정사업 보호육성’을 주장했다. 이들은 △전자카드발급 등 획일적 축소지향적 규제정책 재검토 △장외발매소 축소, 교차투표 금지 규제 재고 등을 요구했다.
여기에 과천 창원 김해시 등 기초자치단체도 가세했다. 이들은 ‘레저세 보전대책 실무협의회’를 구성해 “사행산업이 다소 문제가 있지만 국가발전이나 국민들의 여가 욕구 충족에 대한 기여가 크기 때문에 건전하게 발전시켜야 한다”며 “사감위의 규제책이 도입될 경우 연 8200억원의 지방세수가 감소한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마사회, 국민체육진흥공단, 창원경륜공단, 부산경륜공단 노동조합은 30일 오전 사감위 사무처가 있는 광화문에서 ‘건전레저산업 사수 결의대회’를 열고 사감위를 압박했다.
중앙부처도 예외가 아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4월 창원경륜공단 김해지점의 경정 장외발매소 사업을 허가해줬다.
관련부처 차관급이 참석하는 사감위 전체회의에서 ‘사행산업 건전발전 계획’을 마련할 때까지 추가 사행사업 시설을 신?증설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나 문화부가 이를 어기고 경정 장외발매소를 추가 허가한 것이다. 일부 사감위 민간위원들은 ‘사퇴’를 내걸고 문화부의 허가 취소를 요구했고, 문화부는 뒤늦게 사감위의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통합도박규제법 제정해야” = 한편 도박산업 피해를 막기 위한 301개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도박산업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는 31일 도박산업 건전화 및 중독, 피해자 보호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도박규제네트워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최근 마사회와 농식품수산부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사행산업 건전발전 계획에 노골적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은 민생을 파탄 내는 도박 옹호행위”라며 “사감위를 비롯한 정부와 국회는 사행산업을 총괄적으로 관리하고 규제할 수 있는 통합도박규제법 제정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합법 사행산업 개선 10대 과제’로 △사감위 기능 강화 △사행산업 매출 5년내 50% 감축 △장외발매소 축소, 궁극적 폐지 △사행산업 이용자 무기명 실명 카드 도입 △전화 인터넷 모바일 배팅 전면 금지 △사행산업 광고 중단 △일반 국민 및 청소년에 대한 도박중독 예방 교육, 도박중독자와 가족 치유 △사행사업자와 사업장에 대한 허가제 및 갱신제도 강화 △각종 기금 관리 강화 △사행산업 감독관 파견제 실시 등을 요구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황성기(한양대 교수) 실행위원은 “불법 사행산업 만연의 원인은 경마 경륜 경정 복권 카지노 등 정부가 운영하는 사행산업 규제 미비에 있다”며 “합법 사행산업 성장에 따라 불법도박과 도박문화가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건섭(목사) ‘도박추방을 위한 성직자모임’ 대표는 “마사회의 온라인 배팅에 대한 감사청구, 온라인 도박 금지를 위한 입법청원활동, 문화부의 스포츠토토 전종목 확대 대응 등에 나설 계획”이라며 “각종 사행산업 확정 저지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