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까지 음란 채팅 물든다

소꿉놀이하듯 '어른흉내'… 알몸사진 전송도"무차별 성인메일 범람 부모들 방관이 문제" 

11일 오후 10시 B채팅 사이트의 초등생 채널.

고딩(고교생)놀이 변짓(변태짓)허용'이란 제목이 달린 채팅방에 들어가니 3명씩의 남녀 초등생이 채팅을 하고 있다. 자신들을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고교생'이라고 가정한 가상의 대화다.

처음엔 소꿉놀이처럼 시작했지만 한 명이 '남학생이 밤에 여학생 방에 몰래 들어간다'고 상황을 설정하자 대화내용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잠자는 여학생의 몸을 더듬는다'는 글이 뜨더니 구체적인 성행위를 묘사하는 수준으로 진전됐다.

이날 시민단체인 한국사이버감시단과 함께 취재팀이 모니터한 주요 채팅사이트들은 이렇듯 초등생들의 음란성 대화가 우려했던 수준을 훨씬 넘어 심각한 지경에 와있음을 확인하게 했다.

◆누드사진까지 주고 받는다= 비슷한 시각 초등생들이 즐겨 접속하는 D사이트엔 더 충격적인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수퍼 사진방'이란 이름의 채팅방에 여자 초등생이 자기 알몸을 웹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겨우 열살 남짓한 나이로 보였다.

또 G사이트에선 성인사이트나 스팸메일로 나도는 동화상 파일들을 주고 받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이런 채팅방에는 '야사(야한 사진) 좀 보여줘요''제발 보여주세요'등의 이름이 내걸려 있었다.

B사이트의 채팅 채널에 접속한 시각에 개설돼 있던 49개의 채팅방은 대부분 제목만 봐도 음란 대화방임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남자품에 안기고 싶은 사람만''같이 화끈하게 놀 사람만'등의 채팅방에선 성인 도색물을 뺨치는 수준의 대화가 오갔다.

한 대화방에선 각각 남편과 아내로 역할을 설정한 '신혼놀이'가 진행됐고, 또 다른 곳에선 남학생이 여자 과외선생님과 성행위를 하는 상황을 설정해 이야기를 나누는 '과외놀이'가 이뤄졌다. 몇몇 접속자들은 성폭행 상황을 채팅으로 재현하는 '성폭행 놀이'까지 하고 있었다.

취재팀은 음란영상을 전송한 한 초등생과 채팅 인터뷰를 했다. '서울 쌍문동에 사는 92년생'이라고 소개한 이 초등생은 "인터넷에서 게임 사이트를 검색하다 우연히 포르노 사이트를 본 뒤 매일 야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이버 감시단의 모니터 요원들은 "지난해 말부터 초등생들이 스스로를 고교생이라고 가정하고 채팅을 통해 대화를 풀어나가는 '고딩놀이'가 첫선을 보이더니 곧 다양한 형태의 상황을 설정해 음란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변해갔다"고 설명했다.

한국컴퓨터생활연구소 어기준(37) 소장은 "초등생들이 문자를 주고 받는 채팅으로 만족을 못해 갈수록 자극적인 것을 좇는 실태"라면서 "자위행위를 화상으로 공개한 여자 초등생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부모 무지와 방관이 문제"=정신과전문의 김현수(37) 박사는 "요즘 초등생은 성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도 부모 세대들이 어린 것으로만 인식해 방관하는 게 문제"라고 진단했다. 그런 세태를 만들어내는 주범은 초등생들에까지 무차별로 전달되는 성인 사이트 광고 메일이다(한국사이버감시단 공병철 단장).

문제는 채팅 사이트 업체들과 감독기관인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B채팅사이트 관계자는 "채팅방을 모니터하는 직원이 두 명뿐인 데다 채팅방에 직접 들어가 모니터하는 게 법적으로 금지돼 있어 관리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정보통신윤리위 관계자는 "채팅 사이트의 숫자도 많고 종류도 다양해 일일이 규제하기가 힘들다. 업계의 자율적 규제가 현실적인 대안일 뿐"이라고 했다.

어기준 소장은 ▶사이트에 가입할 때 주민등록번호와 실명을 확인하고▶14세 미만 어린이는 신규가입 때 부모 동의를 받도록 하며▶14세 이상은 어린이 채팅방 입장을 금지하자는 방안을 내놓았다.

*** 조사 어떻게 했나

취재팀과 한국사이버감시단의 공동 모니터링은 초등생이 가장 많이 접속하는 것으로 알려진 B.D.G 등의 채팅 사이트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지난 5~11일 일주일간 본사 기자와 감시단원들이 초등생들의 ID를 빌려 직접 사이트에 들어가 조사했다. 대부분의 채팅 사이트에선 나이.거주지역.직업 등의 정보가 상대방에게 드러나기 때문에 솔직한 채팅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1999년 창립된 한국사이버감시단은 사이버테러대응센터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 등과 협력하며 컴퓨터 유해환경으로부터 네티즌을 보호하고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활동을 해왔다.